현장 기록

기차에서 시작한 코드는 어디까지 갔을까요, 999 Trainthon 1박 2일의 기록

서울역에서 휴대폰으로 시작한 개발이 26개의 결과물로 이어졌습니다. 999 Trainthon의 설계와 현장, 참가자 성과를 소개합니다.

One Degree Labs

999 Trainthon 현수막이 걸린 KTX 12호차 내부

9월 9일 오전 8시, 서울역 대합실 한편에 명찰을 받으려는 참가자들이 줄을 섰습니다. 지난 사전 OT에서 예고된 대로 연세대학교 창업지원단, Cursor, One Degree Labs가 함께하는 「999 Trainthon」 본행사가 시작된 것입니다. 운영진은 출석을 확인하면서 참가자마다 Cursor 계정과 크레딧이 제대로 등록돼 있는지 한 번 더 점검했습니다. 확인이 되지 않은 참가자는 운영진이 개별로 도운 뒤에야 승강장으로 향했습니다. 기차가 출발하면 곧바로 개발을 시작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참가자들이 탄 열차는 강릉행 KTX-이음 807편 12호차였습니다. 객실 앞쪽 벽에는 행사 현수막이 걸렸고, 운영진은 객실 안에 휴대용 Wi-Fi 4대를 배치했습니다. 좌석 배치도 눈여겨볼 만했습니다. 멘토 네 명이 객실 한가운데인 6열에 나란히 앉았고, 참가자들은 그 앞뒤 좌석을 채웠습니다. 막히는 부분이 생기면 몇 줄 앞이나 뒤에 앉은 멘토에게 곧바로 물어볼 수 있는 구조였습니다. 짧은 OT가 끝나자 참가자들은 휴대폰을 꺼내 Cursor Mobile을 열었습니다. OT에서 안내된 규칙에 따라, 이 구간에서 작성하는 코드가 각자의 첫 코드였습니다. 서울에서 강릉까지 약 1시간 50분은 이렇게 대기 시간이 아니라 개발 시간이 됐습니다. 참가자들은 도착 전에 모바일에서 작업한 내용을 커밋하고 push해 두었습니다. 현장에 도착하면 그 코드를 데스크탑에서 이어받기 위해서입니다.


한 참가자는 행사 후 “휴대전화로 개발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어 좋았다”며 Cursor Mobile도 충분히 활용할 수 있을 것 같다고 했습니다. 만족도 조사의 자유 의견에서도 “깃허브 레포를 직접 수정한다는 개념이 신박했다”는 반응이 나왔습니다.


강릉에 도착하자 개발은 데스크탑으로 옮겨갔습니다


본격적인 개발은 오후 1시, 강릉 스카이베이호텔 경포 그랜드볼룸 D, E홀에서 이어졌습니다. 참가자들은 기차에서 push해 둔 작업을 노트북으로 불러와 밤 11시 55분까지 개발을 계속했습니다. 운영진은 행사 전용 Wi-Fi 2대를 따로 운영하면서 계정이나 개발 환경 문의에 상시 대응했습니다.

강릉 호텔 행사장에서 노트북으로 개발을 이어가는 참가자들


강릉에 도착한 참가자들이 호텔 행사장에서 개발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멘토링은 두 가지 방식으로 진행됐습니다. 투자, 사업, 마케팅, 기술 분야 멘토 다섯 명이 테이블을 돌며 피드백을 건네는 순회 멘토링이 하루 종일 이어졌습니다. 저녁 8시부터 9시까지는 1:1 심층 멘토링인 오피스 아워가 열렸습니다. 팀당 10분씩, 원하는 멘토의 시간표 칸에 팀 이름을 직접 적어 넣는 방식이었고 먼저 적은 팀이 그 시간을 가져갔습니다. 멘토진은 장원준 벤처스퀘어 심사역, 송우진 woojinstartup 크리에이터, 전략기획, 사업개발 분야의 홍주영 컨설턴트, 연세대 전기전자 동문인 구철회 Soveryn Pioneer 대표, 진대연 Innate 창업자로 구성됐습니다. 이들은 다음 날 심사위원도 맡았습니다.

행사장 테이블에 모여 노트북으로 작업하고 이야기를 나누는 참가자들


참가자들이 테이블마다 개발을 이어가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습니다.

밤 9시에는 화면 너머로 Ben Lang이 연결됐습니다. Cursor 출신으로 현재 SpaceX AI에 있는 그와의 라이브 패널 토크에서, 참가자들은 사전에 모은 질문을 바탕으로 초고속 성장 기업의 창업가 관점을 직접 들었습니다. 세션이 끝난 뒤에도 행사장의 노트북 화면은 대부분 꺼지지 않았습니다. 심사위원으로 참여한 송우진 크리에이터는 참가자들이 새벽까지 결과물을 만들어가는 모습이 인상 깊었다고 전했습니다.

행사장 화면으로 연결된 Ben Lang의 온라인 라이브 패널 토크


Ben Lang과의 온라인 라이브 패널 토크가 행사장 화면으로 연결됐습니다.

26명 참석, 26건 제출


이번 캠프에는 52명이 지원해 35명이 최종 선발됐고, 이 중 26명이 본행사에 참석했습니다. 선발자 35명의 구성을 보면 공과대학이 25.7%로 가장 많았지만, 언더우드국제대학(17.1%)과 생활과학대학(11.4%)을 비롯해 여러 단과대에서 고르게 참가했습니다. 학부생이 23명, 대학원생이 10명이었고, 창업 경험을 적지 않은 참가자도 17명(48.6%)으로 절반에 가까웠습니다. 개발자와 창업 경험자만 모인 자리는 아니었던 셈입니다.


둘째 날 오전, 결과물 제출이 마감됐습니다. 본행사에 참석한 26명이 모두 결과물을 제출해 제출률은 100%였습니다. 제출과 심사는 해커톤 운영 플랫폼 밀그램(Milgram)에서 진행됐습니다.


심사는 두 단계로 나뉘었습니다. Round 1에서는 제출물 한 건당 심사위원 2명이 교차로 평가해 총 52건의 평가가 이뤄졌습니다. 기준은 제품 완성도, AI 도구 활용도, 사업화, 확장 가능성, 문제 정의 및 사용자 가치 네 가지로, 각각 25%씩 반영됐습니다. 여기서 선정된 Top 10은 팀당 3분 발표와 2분 질의응답을 거쳤고, Round 2에서는 심사위원 5명 전원이 채점했습니다. 이때는 발표, 질의응답 전달력이 항목으로 추가돼 다섯 항목이 20%씩 반영됐습니다.


1위는 ‘코딩 없이 만드는 연구 실험앱’


1위는 김해인 참가자의 「해봄 리서치」였습니다. 대학원생이 코딩 없이 연구 실험용 앱을 만들고 참여자를 모집할 수 있도록 돕는 서비스로, 한 문장짜리 가설을 사람들이 실제로 참여하고 보상을 받는 실험으로 바꿔준다는 설명을 내세웠습니다. 눈에 띄는 것은 만든 사람의 이력입니다. 김해인 참가자는 개발 전공자가 아니라 언론홍보영상학과 소속 대학원생입니다. 제출물 소개에도 “내가 필요해서 만든 앱”이라고 적었습니다. 연구 현장에서 직접 겪은 불편을 스스로 도구로 만들어 해결한 셈입니다. Round 2에서 심사위원 다섯 명 중 두 명이 만점을 줬고, 평균은 9.40점이었습니다. 심사위원들은 개발 동기와 서비스 완성도, 사업 확장 가능성을 높게 평가했습니다. 동시에 실제로 비용을 지불할 주체와 핵심 고객을 더 구체화하고, 그에 맞는 가격 정책과 영업 전략을 세울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습니다.


2위는 이지상 참가자의 「Vouch」가 차지했습니다. AI가 작성한 코드를 또 다른 AI가 검증하는 보안 코드 리뷰 서비스입니다. 취약점을 찾는 Red 에이전트와 이를 독립적으로 검증, 수정하는 Blue 에이전트가 샌드박스 환경에서 테스트까지 수행하는 구조입니다. 심사위원들은 AI 생성 코드의 보안 문제를 시의적절하게 짚었고, 검증에서 패치, 회귀 테스트까지 이어지는 흐름을 전문적으로 구현했다고 평가했습니다.


3위는 이재성 참가자의 「PlayProof」였습니다. 1인, 인디 게임 개발팀을 위한 게임 기획 테스트 서비스로, 플레이 영상과 정량 보고서를 통해 게임의 핵심 구간이 기획 의도대로 작동하는지 검증합니다. 문제 인식이 명확해 “발표를 보고 싶은 팀”이라는 평가를 받았습니다. 다만 현재 결과물은 의뢰 플랫폼의 성격이 강하므로 AI 기반 검증 기능을 강화해 차별성을 확보해야 한다는 의견도 함께 나왔습니다.


흥미로운 점은 Round 2 평균 점수만 보면 3위 PlayProof(7.44점)가 2위 Vouch(7.24점)보다 조금 높았다는 것입니다. 최종 순위는 정량 점수와 심사위원 종합 논의를 함께 반영해 확정됐습니다. Vouch는 AI 활용의 차별성과 발표 역량에서 높은 평가를 받아 최종 투표로 2위에 올랐습니다.


Top 10에는 이 밖에도 단톡방 속 일정을 개인 캘린더로 옮겨주는 「두투두」, 사고 피해자와 블랙박스 영상 제보자를 연결하는 「LUMINA」, 반려동물을 떠나보낸 이들을 위한 「Re:bridge」, LLM이 생성한 분자 구조를 검증하는 「분자 검증 Guardrail」, 인맥 관리 서비스 「MYHR」, 러닝 기반 매칭 플랫폼 「Our Pace」, 디자인 진단서 시스템 「#Mood」가 이름을 올렸습니다. 참가자 투표로 뽑는 특별상은 손형권(LUMINA), 박민준(흩어진 AI 에이전트 정보를 하나로 모으는 서비스), 이지상(Vouch) 참가자가 받았습니다. 1~3위 팀에는 각각 3,000달러, 2,000달러, 1,000달러 상당의 Cursor 크레딧이 주어졌습니다.


참가자들은 이 1박 2일을 어떻게 기억할까요


행사 후 진행된 만족도 조사(유효 응답 25명)에서 전반적 만족도는 5점 만점에 4.64점이었습니다. 사전 OT와 진행 설명 항목은 4.80점으로, 응답자 전원이 긍정적으로 평가했습니다. 차기 해커톤에 대해서는 68%가 “꼭 참가하겠다”, 32%가 “일정이 맞으면 참가하겠다”고 답해 재참가 의향이 100%로 나타났습니다. 결과물을 바로 활용하거나 개선 후 활용하겠다는 응답도 88%였습니다.


아쉬운 점도 있었습니다. 제작 시간이 “적절했다”는 응답은 48%, “조금 부족했다”는 응답은 44%로 거의 비슷했습니다. 기차 안에서 시작해 하루 반 만에 작동하는 결과물을 내야 하는 일정이 결코 여유롭지는 않았던 셈입니다. 한 심사위원은 “3박 4일 같은 1박 2일”이었다고 표현하기도 했습니다.


심사위원으로 참여한 홍주영 컨설턴트는 행사 후 남긴 글에서, 기차 좌석은 소프트웨어를 만들기에 좋은 장소가 아닌데도 팀들이 실제로 작동하는 MVP를 내놓았다고 적었습니다. 이어 이제 병목은 무엇을 만들지, 즉 어떤 문제를 고를지로 거의 옮겨갔다는 소감을 덧붙였습니다. 가장 강한 팀은 자신이 누구의 어떤 문제를 풀고 있는지 정확히 말할 수 있는 팀이었다는 것입니다.


일주일여 전 OT에서 AI 에이전트를 처음 접해본다며 손을 든 참가자가 적지 않았던 것을 떠올리면, 이 말은 더 크게 다가옵니다. 코드를 짜는 일의 문턱이 낮아진 자리에서 참가자들이 1박 2일 동안 가장 치열하게 고민한 것은 결국 “누구를 위해, 무엇을 만들 것인가”였습니다. 서울역에서 휴대폰으로 시작한 26개의 코드가 앞으로 어떤 제품으로 이어질지 지켜볼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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